양깡 : 보람을 느낀 경우는 많이 있으실 것 같습니다만, 언제 느끼셨는지?
범석 : 의외로 의사들은 다 아는 사실이라 그저 그런 내용이라고 스스로 생각한 글에 몰랐던 이야기였다, 좋은 글 잘 봤다고 이야기하는 분들을 만나면 놀랄 때가 많습니다. 나에게는 평범한 사실도 누군가에는 좋은 정보가 된다는 것에 보람을 느끼는 것이죠.
양깡 : 저는 건강보조식품에 대해 문의하는 환자분들에게 가격이 비싸지 않고, 환자의 질병이나 약물과의 관계를 고려해서 특별한 부작용이 예상되지 않으면 실제 효과를 기대하지는 않더라도 드시라고 말하는 편인데, 선생님은 어떠신가요?
범석 : 의사마다 철학이 다른 부분이죠. 저는 말리는 편입니다. 실제로 오픈 마인드를 가지고 건강 보조 식품을 본다면 어떤 효과가 있는 것들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은 합니다. 현재 대부분의 경우 과학적 증거가 없이 효과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에 불과한데, 해 될 것이 없다는 이유로 의사가 먹어도 된다고 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또 효과를 모르는 것처럼, 숨어있는 부작용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에 회의적입니다. 그런 이야기를 블로그에 쓰고 있고요. 때문에 건강보조식품 회사에서 항의 받은 경험도 있었습니다.
양깡 : 의사들 대부분이 보수적인 접근을 하죠. 그렇다면 대체의학이나 민간요법 등에 대해서도 그런 견해를 유지하실 것으로 생각되는데요, 관련된 경험을 말씀해주시겠습니까?
범석 : 대부분의 의사들이 경험하잖아요. 의미 없이 시간을 보내다가 뒤 늦게 병원에 오는 일, 꽤 흔한 일이죠.
양깡 : 사실 저도 경험이 있죠.
범석 : 젊은 환자분들의 경우 더 기억에 오래 남는데요, 상당히 능력 있고 고학력의 환자분이었습니다. 목에 결절(neck node)이 만져져 내원했는데 조직검사에서 선암(adenocarcinoma)으로 나왔습니다. 하지만 원발 부위를 찾을 수 없는 전이 상태 즉, MUO(Metastatic tumors of unknown primary origin)였습니다. 이 원발부위 미상암이라는 것은 환자입장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일입니다. 위암이면 위암, 간암이면 간암, 폐암이면 폐암, 누가 무슨 암이냐고 물으면 그렇게 딱 설명이 가능해야 속 편한데, 원발 부위 미상암이 진단명이라고 하면 이해하기 힘들겠죠.
양깡 : 종종 볼 수 있는 경우 아닌가요?
범석 : 우리는 종종 보지만, 환자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들죠. 자신이 전이상태라는 것도 받아들이기 힘들고요. 젊은 분이었기 때문에 한번이라도 더 손이 가잖아요. 퇴원하시겠다고 하시는 것을 붙잡고 가족들과 한참을 이야기를 나눴습니다만, 결국 면역 증강시키는 대체 요법을 받겠다고 퇴원하셨지요.
양깡 : 다시 안 돌아오셨나요?
범석 : 3개월 후 늑막에 물이 차서 내원하셨는데 그 때에는 더 이상 손 쓸 방도가 없어서 안타까웠죠.
양깡 : 소록도 병원에서 작년에 근무한 것으로 아는데요? 좀 걱정스럽지는 않으셨는지요?
범석 : 네. 특히 어린 아들과 아내를 데리고 소록도에 들어갔기에 좀 걱정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인생에 있어서 상당히 좋은 경험이었어요. 한센병 환자들과의 만남과 함께 근무한 병원 직원분들, 모두 저에게는 소중한 기억입니다.
양깡 : 한센병이 전염력이 거의 없다고 들었는데 맞나요?
범석 :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한센병의 병원균은 마이코박테리움(mycobacterium), 결핵균의 사촌쯤 될 겁니다. 상당히 천천히 자라고(slow growing) 노출된 사람 (host)의 면역력(immunity)가 괜찮으면 균이 들어왔다고 하더라도 감염으로 대부분에 있어서는, 이어지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지금 감염된 분을 보면 과거 상당히 생계가 어려웠던 40-50년대에 감염된 분들이 대부분이죠. 지금은 대부분 영양상태가 좋잖아요. 또 BCG 예방을 하게 된 것도 감염을 낮추는데 영향을 줬다고 알려졌습니다. 한 50%에서는 예방 효과가 있다고 알려졌거든요.
양깡 : 최근 감염 사례가 있나요? 전 못들은 것 같은데..
범석 : 2006년에 15 사례가 있어요. 그런데 그 분들도 연세가 많으시고 BCG 접종을 안한 세대시죠. 막연하게 불안해할 수도 있는 부분이지만, 모르면 모를수록 더 불안한 것 같아요. 특히 한센병은 감염되면 얼굴 형태가 변하고, 병의 원인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에 차별이 심했던 질병이죠. 함께 생활하면서 느끼는 것도 많고 배운 것도 많았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글로 썼다가 운 좋게 상도 받았죠.
양깡 : 혹시 소록도 할머니 이야기 쓰신 분이 선생님이세요? 보령 의사 수필 문학상 대상이였던 글?
범석 : 네, 생각하지도 못했던 일이죠. 덕분에, <<에세이문학>>을 통해 수필가로 문단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정말 예상하지도 못한 일이죠.
양깡 : 저도 상당히 감동적으로 읽었습니다. 그런 경험을 블로그나, 책으로 내도 좋을 것 같은데요?
범석 : 그렇지 않아도 그 당시의 경험들을 담은 일기 형식의 글이 다음 주에 발간됩니다.
양깡 : 알면 알수록 신기한 분이네요. 제가 공중보건의사 중에 평범하지 않은 분들을 몇 분 알고 있고, 저 역시 그리 평범하지는(?) 않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선생님 보니 대단하단 생각뿐이네요.
범석 : 그렇지 않습니다. 평범해요. 시간이 있을 때 하고 싶었던 것을 했을 뿐이죠.
양깡 : 하루 방문자수가 얼마나 되나요?
범석 : 사실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네이버 블로그에 있을 때 하루 100여명정도 방문했으니까요. 1년간 2만명 조금 넘는 방문자 수를 가지고 있는데, 많다고 생각했었는데 요즘 닥블 회원 블로그의 방문자 수를 보면 정말 적죠. 하하.
양깡 : 그 내용과 정성을 방문자 수로 환산한다는 것은 좀 무리가 있습니다만, 컨텐츠의 질과 노력에 비해 방문자 수는 좀 적다고 생각되는데요, 혹시 메타블로그 활용을 하시나요?
범석 : 사실, 잘 모릅니다. 트랙백, RSS도 잘 모르구요. 메타블로그도 잘 몰랐는데 양깡님 블로그보고 알았어요. 네이버에 블로그 열고 열심히 글 쓰면 봐주지 않을 까란 생각에 썼는데 최근에는 블로그도 티스토리와 병행 운영하고, 메타블로그에도 등록하고, 다음 블로거 뉴스에도 송고하고 있습니다. 공부도 좀 하면서 네이버 밖에서의 활동을 해보려고요.
양깡 : 블로그하면서 잃은 것 이 있다면요?
범석 : 시간과 시력인 것 같아요. 눈이 너무 아파요. 시간은 잠 좀 덜 자면 되는데 모니터를 자주 들여다보니 눈이 아파요. (웃음)
양깡 : 블로그를 통해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범석 : 의료 시스템에 대한 문제가 많다는 것은 모든 의사가 많이 알잖아요? 양깡님이나 고수민 선생님 블로그, 한정호 선생님의 블로그를 통해 많이 지적하고 있지만 의사에 대한 신뢰가 깨져있기 때문에 신뢰가 구축되지 않는다면 시스템의 변화는 생기기 힘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양깡 : 의사들이 블로그를 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죠.
범석 : 그런데 고민스러운 점은 의사들이 블로그를 하면서 변질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죠. 상업적인 목적, 근거가 부족한 치료나 검사법을 우리병원만 하는 것이라고 홍보하면서 환자를 유인하는 것은 경계해야 합니다.
양깡 : 좋은 사람만 블로그하란 법은 없으니까요.
범석 : 그런 것에 대해 사실 의사들이 자정노력을 해야 하고, 전문가가 전문가를 평가해야 하는데 너무 소홀한 면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비전문가가 전문가를 평가하고 그 내용이 부정확할 때가 있죠. 의학뿐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합니다만..
양깡 : 저도 그런 시스템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합니다. 학회처럼 언젠가는 의사 블로거간에 검증 (peer review)가 필요할 때가 올지도 모르죠. 의사 블로거가 많이 늘어난다면 말이죠.
범석 : 웹에 올라오는 의학 정보를 권위적으로 인증할 수 있는 집단이 있다면 이상적이지만, 사실 그렇게 되기란 어렵고, 또 너무 권위를 내세우다 보면 문제가 생기겠죠. 아직은 그 보다는 활동하는 의사가 많아지는 것이 먼저인 것 같습니다.
바쁜 시간 가운데서 만나주신 김범석 선생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무엇보다도 문학을 아는 의사라는 점에서 상당히 존경스럽습니다. 이번에 새롭게 나오는 수필집도 그래서 기대 되는데요. 앞으로도 블로그를 통해 좋은 글을 만나게 되길 기대합니다. 진료실에서 못다한 항암치료 이야기를 보러 함께 가보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