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으로 고통 받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취지로 블로그 '
양깡 : 할아버지와 아버지 모두 암으로 돌아가셨다고 책과 블로그에 소개되었던데요, 의대와 종양내과를 선택한 계기가 되셨나요?

범석 : 돌아보면 그렇게 된 것 같아요. 사람이 살다 보면 본인의 의지와 별개로 자기가 다른 길로 가고 있음을 발견하게 될 때가 있잖아요. 원래는 95년에 같은 학교에 있는 화학공학과를 다녔었어요. 어느 날 이게 내 길이 아니구나 싶었죠. 꼭 가고 싶어서 간 것이 아니었거든요. 그 때 의대에 다시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죠. 되돌아보면 그렇게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당시에는 잘 몰랐지만요.

양깡 : 책 제목이 '진료실에서 못다한 항암치료 이야기'인데 책 제목을 보면 실제 진료실에서는 설명을 자세히 못한 것에 대한 후회스러움이 제목에 담겨있는 것 같네요? 진료실에서 설명 잘 안 하셨어요? (웃음)

범석 : 나름대로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부족한 부분이 있었죠. 후회가 섞인 제목은 맞아요. 사실 저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모든 의사들, 특히 대학 병원에 있는 전공의들은 시간에 쫓겨 살죠. 제가 있던 서울대 종양내과 외래를 보면 교수님 한 명이 하루 외래에 100명씩 진료를 보거든요. 100명이 굉장히 쉽게 보일 수도 있지만, 오전 50명 오후 50명 보다 보면, 환자들이 궁금해하는 것의 많은 부분을 설명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부족한 설명을 다른 매체를 통해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죠. 레지던트 때도 그런 생각을 했는데 시간이 없어서 그러지 못했고, 공중보건의사가 돼서 블로그를 운영했는데 나름 반응이 좋았습니다. 블로그는 20-30대 분들 비교적 젊은 분들이 찾아주시고, 대부분 보호자 분들이 오셨는데요, 연세 드신 분들은 인터넷 하기가 힘드실 것 같아서 블로그의 글들을 모아 같은 제목으로 책으로도 냈습니다.

양깡 : 온, 오프라인을 다 커버하시려고 책을 내신 것이군요. 의사 사회가 상당히 보수적이고, 동료들의 시선에 대한 부담 있기 때문에 책 쓴다는 것이 젊은 의사들에게는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 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부담을 못 느끼셨는지요?

범석 : 사실 고민을 많이 했죠. 보통 의학 관련 책이라고 하면 연륜이 있으시고 존경 받는 교수님들이나 쓰신다고 생각했죠. 문제는 그런 교수님들이 시간이 없다는 것이죠. 암에 대한 검색을 포털에서 해보면 얼토당토않은 민간요법, 상업적 목적으로 건강보조식품 회사 및 판매자 들이 제공한 글들이 쭈욱 나옵니다. 제대로 된 정보가 제공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죠. 사실 처음에는 상당히 놀랬습니다. 누군가는 제대로 된 정보를 줘야하는 데란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부족한 부분이 많지만 이렇게 시작하고 나면 더 훌륭한 분들이 보완된 내용으로 업그레이드 해주시겠죠.

양깡 : 동료 의사들간의 보이지 않는 압력(?) 눈치, 걱정들도 있었을 법 한데요?

범석 : 스스로 느끼는 부담이 컸죠. 특히 제가 나온 병원의 교수님들께 누가 될까 걱정을 많이 했고요. 하지만 상업적인 내용도 아니었고, 사실에 근거한 글들을 썼으니까요. 제가 아는 동문이나 교수님들께서는 대부분 격려를 해주셨죠. 또 웹 페이지를 구상하고 계신 교수님과는 내용을 공유할 계획을 가지고 있어요.

양깡 : 블로그하면서 재미있는 에피소드 있으신가요?

범석 : 메일을 많이 받습니다.대부분 다급해서 물어볼 곳이 없어 메일을 보내시더라고요. 어머님 상태가 이러신데 담당 선생님은 가타 부타 말씀이 없고 어떻게 해야 좋으냐, 병원 옮겨야 하느냐, 다른 치료 받아야 하느냐 등등.. 이런 질문이죠. 사실 답하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제대로 된 정보도 없고 의학적 정보는 전무한 상태에서 조언하는 것은 사실 추론에 의한 조언에 불과하죠. 답하기도 조심스럽고, 실제 진료를 보는 선생님 입장만 난처해지고 결과적으로 환자가 제대로 된 치료를 받는 것을 방해할 수가 있기 때문에 답변해 드려서도 안 되는 부분도 있고요. 재미있는 일은 아니지만 가장 큰 고민입니다.


양깡 : 보람을 느낀 경우는 많이 있으실 것 같습니다만, 언제 느끼셨는지?

범석 : 의외로 의사들은 다 아는 사실이라 그저 그런 내용이라고 스스로 생각한 글에 몰랐던 이야기였다, 좋은 글 잘 봤다고 이야기하는 분들을 만나면 놀랄 때가 많습니다. 나에게는 평범한 사실도 누군가에는 좋은 정보가 된다는 것에 보람을 느끼는 것이죠.

양깡 : 저는 건강보조식품에 대해 문의하는 환자분들에게 가격이 비싸지 않고, 환자의 질병이나 약물과의 관계를 고려해서 특별한 부작용이 예상되지 않으면 실제 효과를 기대하지는 않더라도 드시라고 말하는 편인데, 선생님은 어떠신가요?

범석 : 의사마다 철학이 다른 부분이죠. 저는 말리는 편입니다. 실제로 오픈 마인드를 가지고 건강 보조 식품을 본다면 어떤 효과가 있는 것들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은 합니다. 현재 대부분의 경우 과학적 증거가 없이 효과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에 불과한데, 해 될 것이 없다는 이유로 의사가 먹어도 된다고 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또 효과를 모르는 것처럼, 숨어있는 부작용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에 회의적입니다. 그런 이야기를 블로그에 쓰고 있고요. 때문에 건강보조식품 회사에서 항의 받은 경험도 있었습니다.

양깡 : 의사들 대부분이 보수적인 접근을 하죠. 그렇다면 대체의학이나 민간요법 등에 대해서도 그런 견해를 유지하실 것으로 생각되는데요, 관련된 경험을 말씀해주시겠습니까?

범석 : 대부분의 의사들이 경험하잖아요. 의미 없이 시간을 보내다가 뒤 늦게 병원에 오는 일, 꽤 흔한 일이죠.

양깡 : 사실 저도 경험이 있죠.

범석 : 젊은 환자분들의 경우 더 기억에 오래 남는데요, 상당히 능력 있고 고학력의 환자분이었습니다. 목에 결절(neck node)이 만져져 내원했는데 조직검사에서 선암(adenocarcinoma)으로 나왔습니다. 하지만 원발 부위를 찾을 수 없는 전이 상태 즉, MUO(Metastatic tumors of unknown primary origin)였습니다. 이 원발부위 미상암이라는 것은 환자입장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일입니다. 위암이면 위암, 간암이면 간암, 폐암이면 폐암, 누가 무슨 암이냐고 물으면 그렇게 딱 설명이 가능해야 속 편한데, 원발 부위 미상암이 진단명이라고 하면 이해하기 힘들겠죠.

양깡 : 종종 볼 수 있는 경우 아닌가요?

범석 : 우리는 종종 보지만, 환자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들죠. 자신이 전이상태라는 것도 받아들이기 힘들고요. 젊은 분이었기 때문에 한번이라도 더 손이 가잖아요. 퇴원하시겠다고 하시는 것을 붙잡고 가족들과 한참을 이야기를 나눴습니다만, 결국 면역 증강시키는 대체 요법을 받겠다고 퇴원하셨지요.

양깡 : 다시 안 돌아오셨나요?

범석 : 3개월 후 늑막에 물이 차서 내원하셨는데 그 때에는 더 이상 손 쓸 방도가 없어서 안타까웠죠.

양깡 : 소록도 병원에서 작년에 근무한 것으로 아는데요? 좀 걱정스럽지는 않으셨는지요?

범석 : 네. 특히 어린 아들과 아내를 데리고 소록도에 들어갔기에 좀 걱정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인생에 있어서 상당히 좋은 경험이었어요. 한센병 환자들과의 만남과 함께 근무한 병원 직원분들, 모두 저에게는 소중한 기억입니다.

양깡 : 한센병이 전염력이 거의 없다고 들었는데 맞나요?

범석 :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한센병의 병원균은 마이코박테리움(mycobacterium), 결핵균의 사촌쯤 될 겁니다. 상당히 천천히 자라고(slow growing) 노출된 사람 (host)의 면역력(immunity)가 괜찮으면 균이 들어왔다고 하더라도 감염으로 대부분에 있어서는, 이어지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지금 감염된 분을 보면 과거 상당히 생계가 어려웠던 40-50년대에 감염된 분들이 대부분이죠. 지금은 대부분 영양상태가 좋잖아요. 또 BCG 예방을 하게 된 것도 감염을 낮추는데 영향을 줬다고 알려졌습니다. 한 50%에서는 예방 효과가 있다고 알려졌거든요.

양깡 : 최근 감염 사례가 있나요? 전 못들은 것 같은데..

범석 : 2006년에 15 사례가 있어요. 그런데 그 분들도 연세가 많으시고 BCG 접종을 안한 세대시죠. 막연하게 불안해할 수도 있는 부분이지만, 모르면 모를수록 더 불안한 것 같아요. 특히 한센병은 감염되면 얼굴 형태가 변하고, 병의 원인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에 차별이 심했던 질병이죠. 함께 생활하면서 느끼는 것도 많고 배운 것도 많았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글로 썼다가 운 좋게 상도 받았죠.

양깡 : 혹시 소록도 할머니 이야기 쓰신 분이 선생님이세요? 보령 의사 수필 문학상 대상이였던 글?

범석 : 네, 생각하지도 못했던 일이죠. 덕분에, <<에세이문학>>을 통해 수필가로 문단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정말 예상하지도 못한 일이죠.

양깡 : 저도 상당히 감동적으로 읽었습니다. 그런 경험을 블로그나, 책으로 내도 좋을 것 같은데요?

범석 : 그렇지 않아도 그 당시의 경험들을 담은 일기 형식의 글이 다음 주에 발간됩니다.

양깡 : 알면 알수록 신기한 분이네요. 제가 공중보건의사 중에 평범하지 않은 분들을 몇 분 알고 있고, 저 역시 그리 평범하지는(?) 않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선생님 보니 대단하단 생각뿐이네요.

범석 : 그렇지 않습니다. 평범해요. 시간이 있을 때 하고 싶었던 것을 했을 뿐이죠.


양깡 : 하루 방문자수가 얼마나 되나요?

범석 : 사실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네이버 블로그에 있을 때 하루 100여명정도 방문했으니까요. 1년간 2만명 조금 넘는 방문자 수를 가지고 있는데, 많다고 생각했었는데 요즘 닥블 회원 블로그의 방문자 수를 보면 정말 적죠. 하하.

양깡 : 그 내용과 정성을 방문자 수로 환산한다는 것은 좀 무리가 있습니다만, 컨텐츠의 질과 노력에 비해 방문자 수는 좀 적다고 생각되는데요, 혹시 메타블로그 활용을 하시나요?

범석 : 사실, 잘 모릅니다. 트랙백, RSS도 잘 모르구요. 메타블로그도 잘 몰랐는데 양깡님 블로그보고 알았어요. 네이버에 블로그 열고 열심히 글 쓰면 봐주지 않을 까란 생각에 썼는데 최근에는 블로그도 티스토리와 병행 운영하고, 메타블로그에도 등록하고, 다음 블로거 뉴스에도 송고하고 있습니다. 공부도 좀 하면서 네이버 밖에서의 활동을 해보려고요.

양깡 : 블로그하면서 잃은 것 이 있다면요?

범석 : 시간과 시력인 것 같아요. 눈이 너무 아파요. 시간은 잠 좀 덜 자면 되는데 모니터를 자주 들여다보니 눈이 아파요. (웃음)

양깡 : 블로그를 통해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범석 : 의료 시스템에 대한 문제가 많다는 것은 모든 의사가 많이 알잖아요? 양깡님이나 고수민 선생님 블로그, 한정호 선생님의 블로그를 통해 많이 지적하고 있지만 의사에 대한 신뢰가 깨져있기 때문에 신뢰가 구축되지 않는다면 시스템의 변화는 생기기 힘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양깡 : 의사들이 블로그를 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죠.

범석 : 그런데 고민스러운 점은 의사들이 블로그를 하면서 변질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죠. 상업적인 목적, 근거가 부족한 치료나 검사법을 우리병원만 하는 것이라고 홍보하면서 환자를 유인하는 것은 경계해야 합니다.

양깡 : 좋은 사람만 블로그하란 법은 없으니까요.

범석 : 그런 것에 대해 사실 의사들이 자정노력을 해야 하고, 전문가가 전문가를 평가해야 하는데 너무 소홀한 면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비전문가가 전문가를 평가하고 그 내용이 부정확할 때가 있죠. 의학뿐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합니다만..

양깡 : 저도 그런 시스템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합니다. 학회처럼 언젠가는 의사 블로거간에 검증 (peer review)가 필요할 때가 올지도 모르죠. 의사 블로거가 많이 늘어난다면 말이죠.

범석 : 웹에 올라오는 의학 정보를 권위적으로 인증할 수 있는 집단이 있다면 이상적이지만, 사실 그렇게 되기란 어렵고, 또 너무 권위를 내세우다 보면 문제가 생기겠죠. 아직은 그 보다는 활동하는 의사가 많아지는 것이 먼저인 것 같습니다.






진료실에서 못다한 항암치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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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석 지음 |
아카데미북 펴냄


항암 치료에 관한 내용을 담은『진료실에서 못다한 항암치료 이야기』. 이 책은 암 환자와 보호자들이 알아둬야할 내용을 소개한 항암 치료 가이드북으로 암 진단에서부터 요양에 이르기까지 암 치료의 전반적인 내용을 담았다. 《진료실에서 못다한 항암치료 이야기》는 암 발생의 원인과 치료 방법, 항암 치료 원리와 결정, 암에 좋은 음식과 민간요법, 호스피스 등 의사가 해주지 못한 설명과 환자가 궁금한 이야기를 담아 상







천국의 하모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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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석 지음 |
휴먼앤북스 펴냄


인생의 길목에서 만난 청년의사의 소록도 이야기 청년의사 김범석의 감동적인 휴먼 에세이. 공중보건의인 저자가 자원해서 1년간 소록도병원에서 근무하며 한센병 환자들을 진료하면서 환자들과 함께 보낸 시간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저자는 한때는 멸시받아, 이제는 잊혀져 더 슬픈 우리 이웃들의 가슴 아프지만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통해 자신의 삶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이야기한다.



바쁜 시간 가운데서 만나주신 김범석 선생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무엇보다도 문학을 아는 의사라는 점에서 상당히 존경스럽습니다. 이번에 새롭게 나오는 수필집도 그래서 기대 되는데요. 앞으로도 블로그를 통해 좋은 글을 만나게 되길 기대합니다. 진료실에서 못다한 항암치료 이야기를 보러 함께 가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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