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U 인턴으로의 첫 회진 준비 시간이 어떻게 흘러간 것일까? 잘 기억도 나지 않는다. 땀을 뚝뚝 흘리며 그렇게NSICU (신경외과 중환자실)로 뛰어가 또 다시 시작된 ABGA와 Blood Culture와의 싸움을 했다.

'내가 이 환자 한 명 때문에 이 먼길을 와야 하다니...'

'빨리 해치우고 가야 콜이 안 쌓인다... 빨리 빨리...'

마음 속에는 삐뽀삐뽀 싸이렌이 울리고 맘은 타기 시작한다. 급하게 syringe를 잡고 환자의 혈관을 찾아 공략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방망이 깎던 노인' 이라는 고대의 명전을 왜 교과서에 실어 놓았겠는가. 쿡 찌른다고 혈액이 '안녕~' 외치며 나와줄 것이었다면 굳이 의료인이 필요도 없겠다만...

나는 그러한 전후 과정을 세세히 살필틈도 없이 '대충 이 정도면 되겠다!' 하는 마음에 자세도 확실히 잡지 않고... 바늘을 밀어넣은 것이다.
 
지금이야 차라리 맥이 뛰는 곳을 오랫동안 탐색해서라도 확실히 한 다음 바늘을 밀어넣는 것이 원샷 원킬의 지름길임을 알고 있다만 그게 어찌 술기 한참 쉬다 돌아온 인턴에게 가능할 법한 일이던가.

급한 마음에 찔렀으나 돌아오는 것은 텅 빈 주사기. 바늘을 요리조리 돌려보는 특단의 조치를 취해 봤으나 역시나 실패...

마음은 점차 더 급해지고 '이제 다른 곳을 해야겠다.' 다른 주사기를 바꿔들고 또 찔렀으나... 또 실패...
이렇게 실패를 연타하다 보니...

이미 셔츠는 땀이 뒤범벅...

이런 당혹한 결과 앞에 이마에도 땀이 송글송글...

그러나 그런다고 어떤 누구 손을 내밀어 도와줄리 없기에 또 다시 시도 하였으나 실패...

이쯤하니 좌우로 3개의 주사바늘 구멍이 손목에 새겨졌다...

그것을 지켜보고 있던 간호사가 답답했는지 말을 던진다...
 
"선생님 그 환자분 Mental 있으신 분이에요. 아픈거 다 느껴요. 그거 그냥 제가 도와드릴게요. 옆에서 잠깐 keep만 해주세요."
 
'아뿔싸.'

그제서야 얼굴을 베게에 묻은채 누워있는 환자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무리 냉장고에 코끼리를 넣으라면 완수를 해야 하는 것이 인턴이라지만...

그것보다 내가 왜 의사인가...

환자를 사랑하겠다던 마음은 어디로 간건지 반성도 되고...

술기에 능숙하지 못해 고통을 주어야만 했던 내 자신이 원망스러워 지기 시작했다...
 
아울러 머쓱하게 간호사가 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혹시라도 벌어질 미연의 위급한 상황이 있을까봐 자리를 떠나지 않고 있었다니...

뚝딱 한 방에 해치워 버리는 간호사...

또 더욱 무안해 지시고...
 
그렇게 일을 처리하고 돌아와서는 길에서 마주친 인턴과 어떻게 하면 술기를 잘 할 수 있을지에 대해 한참 동안을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들 일치하는 조언은...
 
'절대 서두르지 말 것.'

'확신이 들 때 술기를 시행할 것'
 
등등 말이야 뻔했지만...

어느 순간 망각하고 있었던 일들에 대한 것들이었다...
 
 
물론 한 달 이라는 긴 ICU 그리고 ER 파트를 도는 동안 위와 같은 마음가짐을 언제 가졌는지 감감한 시절이 있을 때도 많았다...
 
심지어 새벽에 일어나 일 하는 것도 힘든 판에 협조 조차 해주시지 않는 야속한 환자분들을 보면...

'에라 모르겠다. 될대로 되라지.'

라고 외치며 시행을 우선시 하고 싶은 적이 한 두번이 아닌 때도 많았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반성을 하며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다시 한 번 다짐해 본다...
 
'나의 부모님이 아파 누워계신다면... 내가 어떻게 수기를 시행했을까?'

'자를 사랑하자... 그들은 이미 아픈데... 내가 더 아프게 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어느 순간 지난 해에 병원에 입원해 계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거기에 채혈을 하면서 아파하시던 모습이 떠올랐다...

나도 어느 순간...

그렇게 수기를 행함에 있어 너무나도 사자의 고통에 무던해 진 것이 아니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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