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션트 스토리] 한국다발성경화증협회 유지현 회장 인터뷰
30~40대 여성에 호발…재발 예방치료 성공 시 생업 종사 가능
좋은 신약 나와도 급여 진행에 시간 소모…"신속 급여 필요해"
유병기간 길수록 합병증 위험↑…합병증 치료 산정특례 안돼
재발로 장애 더해질수록 치료비 부담 높아져 치료 포기하기도
암과 달리 '완치' 개념 없는 희귀질환에 대한 사회적 배려 필요

다발성경화증(Multiple Sclerosis, MS)은 뇌, 척수, 시신경 등 우리 몸 전체에 깔린 신경섬유 속살인 '축삭'을 둘러싼 피막 '수초'가 자가면역세포에 의해 손상되며 나타나는 희귀난치성질환이다. 겉질인 수초가 손상되면 축삭이 바깥에 노출되면서 신경섬유를 통한 신경계 정보 전달에 문제가 초래되는데, 수초 손상 부위가 어디이고 얼만큼 손상됐냐에 따라 다발성경화증 환우의 증상은 그야말로 천차만별로 나타난다. 

특히 다발성경화증은 발병 뒤 치료를 지속해도 재발과 완화가 반복되는 특징을 보이는데, 재발할수록 기존 장애가 더 심해지기도 하고 새로운 장애가 더해져 점차 여러 장애가 복합되는 방식으로 악화될 수 있다. 누군가는 첫 발병으로 심각한 뇌졸중 환우 같이 평생 와상상태에 놓일 수도 있고, 누군가는 팔다리에 이상감각으로 시작해 하반신 마비로 진전되고 여기에 시신경장애도 초래돼 결국 다리와 시력 모두를 잃기도 한다. 

더 문제는 한창 사회에서 꿈을 펼치며 국가경제의 기둥 역할을 하는 20~40대에게 다발성경화증이 주로 발병한다는 것이다. 인구 10만명 당 3.2명 꼴로 생기는 다발성경화증은 20~40대 남성보다 여성 환우가 많고, 실제 30대 여성 환자가 가장 많은 질환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젊은 환우 중 서서히 악화되는 유형은 병의 특성에 더해 병원을 잘 가지 않는 특성마저 더해져 장애 위험을 줄일 약물치료를 빠르게 받지 못하기도 한다.  

지난 1998년 1월 오른쪽 정강이에 이상감각이 나타나며 다발성경화증이 시작된 한국다발성경화증협회 유지현 회장(70세)은 당시 다른 다발성경화증 환우들에 비해 병을 빨리 진단받은 편이지만, 서서히 악화되는 형태로 병이 나타나 진단받는데 약 10개월이 걸렸다. 당시 고등학교 교사였던 유 회장은 "1월 초 학교 시무식에 참석하려고 아침에 샤워를 하는데, 물이 정강이에 닿는 감각이 평소와 달랐다"며 첫 증상을 떠올렸다.  

한국다발성경화증협회 유지현 회장. 사진 제공=한국다발성경화증협회
한국다발성경화증협회 유지현 회장. 사진 제공=한국다발성경화증협회

첫 증상이 나타난 날 그는 제자가 있는 한의원에 바로 진료를 보러갔다. 유지현 회장은 "그날 한의원에 가서 침도 맞고 한약도 지어 먹으며 3개월간 지냈는데 한동안 증상이 그대로 가다가 서서히 보행이 어려워지고 대소변장애가 더해지는 방식으로 병이 악화됐다"며 "더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강남성모병원(현 서울성모병원)을 가게 됐다"고 그때의 일을 회상했다. 

신경과와 비뇨기과 진료 뒤 강남성모병원에서는 그를 강직성척추염 환자로 여기며 치료를 시작했는데, 7개월 간의 약물치료에도 불구하고 그의 하반신장애는 더 심해졌다. 그 전까지 건강했던 그는 그해 수학능력시험이 치뤄질 쯤 벽을 짚어야만 걸을 수 있었고, 서서 수업하기 어려워 앉아서 수업해야 했다. 주변 지인들은 계속 악화되는 그를 보며 병원을 옮기라고 권했고, 그는 수능시험이 끝난 뒤 서울대병원으로 향했다. 

진료 예약을 위해 간 서울대병원에서 그는 신경과 외래 앞을 지나치다 한 의사를 우연히 만나게 됐고, 그 덕분에 그날 바로 입원해 MRI를 찍을 수 있었다. 이튿날 오전 그는 '다발성경화증' 진단을 받았다. 그때는 지금보다 다발성경화증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았고 진단환경도 좋지 않아 일부 환자는 병을 진단받기 위해 미국 등 해외로 나가기도 했었는데, 그는 눈썰미가 좋은 한 신경과 의사의 판단으로 빠르게 진단받게 된 셈이다. 

유 회장은 "그 당시 다발성경화증 진단은 재발이 3번 이상 있을 때 할 수 있었을만큼 진단환경이 지금과 달랐다. 그때보다 지금은 다발성경화증 진단환경이 많이 좋아졌지만 다발성경화증이 '천의 얼굴'로 나타나다보니 10년 넘는 시간이 걸려 병을 진단받는 환우도 아직 있는 것으로 안다"며 "하지만 2000년대부터 이 병이 많이 알려지며 확실히 예전보다 진단이 빨라진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다발성경화증 치료 여건도 유지현 회장이 진단받을 당시보다 크게 개선됐다. 고용량 스테로이드제제로 급성기 치료를 끝낸 뒤 재발 방지를 위해 그는 1999년 1월쯤 신약 '인터페론'을 이틀에 한 번씩 피하주사로 맞기 시작했는데, 그때는 그 약이 재발 방지 약제로 유일했다. 또 비급여여서 전액 본인부담으로 치료를 받아야 했기에 한 달에 인터페론 약값만으로 200만원 가까이 지출해야 했다. 

인터페론을 맞은 뒤부터 다발성경화증 재발 간격이 1~2개월에서 6개월, 1년, 2년으로 차츰 늘어났기에 대부분의 환우들은 인터페론 치료를 포기할 수 없었다. 하지만 다발성경화증으로 장애를 얻어 경제적 능력을 점점 더 잃어가는 상황에서 평생 이 약을 매달 약 200만원에 맞는 것이 어려웠기에 다발성경화증 환우들이 '인터페론 급여'를 위해 뭉쳐야 될 필요성을 느끼게 됐다.      

또 다발성경화증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낮아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었기에 다발성경화증 환우들은 건강하게 치료하며 서로를 지키기 위한 환우모임이 절실했다. 유지현 회장은 "당시 이 병으로 자살하는 다발성경화증 환우들이 많았는데, 이런 환우들이 집에 고립되지 않고 밖으로 나올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무엇보다 재발 억제를 위해 인터페론 치료를 지속하기 위해서도 급여 작업이 필요했다"고 그때를 떠올렸다. 

그는 같은 처지의 다발성경화증 환우들을 모으기 위해 병원홈페이지에 다발성경화증에 대한 질문을 남긴 사람의 이메일주소를 수집해 메일을 보냈다. 이를 통해 모은 환우들과 서울대병원에서 우연히 만난 다발성경화증 환우 신현민 씨와 의기투합해 2001년 3월 23일 총 18명의 환우가 뭉친 한국다발성경화증환우회를 출범했다. 개인사업을 하던 신현민 씨가 초대 회장을 맡고, 교직에 몸 담고 있던 그가 초대 부회장을 맡았다. 

이후 다발성경화증환우회가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내면서 다발성경화증에 대한 사회 인식이 증진됐고 보건복지부와 국회의 문의 두드려 인터페론도 빠르게 급여가 적용됐다. 또 지난 2003년 1월에는 다발성경화증이 산정특례 대상 질환이 되면서 치료비 부담이 더욱 낮아졌다. 재발예방약 선택범위도 과거보다 확연히 넒어졌다. 유 회장은 "그땐 인터페론 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신약이 매년 하나꼴로 개발된다"고 짚었다. 

또 그간 의학의 발달로 다발성경화증으로 알았던 환우들이 더 정확한 병명을 찾아가는 일도 벌어졌다. 초대 회장을 맡은 신현민 씨가 2018년 다발성경화증처럼 수초가 벗겨지며 나타나는 탈수초질환인 '시신경 척수염 범주질환'으로 진단받았고 그 외의 여러 탈수초질환이 알려지며 대한다발성경화증학회가 2020년 대한신경면역학회로 이름을 바꾼 것처럼 다발성경화증환우회도 그쯤 탈수초질환 환우 모두를 껴안은 다발성경화증협회로 이름을 바꿨다.

유지현 회장. 사진 제공=한국다발성경화증협회

급변한 다발성경화증 진단과 치료 환경은 질병의 예후도 크게 변화시켰다. 성공적인 재발예방치료를 통해 직장을 잃지 않고 생업에 종사하는 다발성경화증 환우가 과거보다 많아지게 된 것이다. 유지현 회장은 지난 2001년 교직을 그만뒀지만, 꾸준히 재발예방치료를 받으면서 여전히 벽을 짚고 걸을 수 있는 상태의 건강상태를 유지하며 20년 넘게 다발성경화증 환우들을 위해 일하고 있다. 또 요즘은 재발예방치료를 통해 적지 않은 젊은 다발성경화증 환우들이 직장생활을 지속하고 있다.   

현재 더 많은 다발성경화증 환우들이 더 효과적인 재발예방치료를 통해 생업에 종사할 길도 없지 않다. 하지만 다발성경화증 재발예방 신약에 대한 보험 급여가 이뤄지기까지 긴 시간이 소요되고 병 초기가 아닌 장애가 심해질 때 쓸 수 있게 '몇 차례 재발 뒤'로 신약 급여 설정이 이뤄지면서 장애를 얻어 직업을 잃는 환우들이 여전히 적지 않다.

유지현 회장은 "매년 효과 좋은 다발성경화증 신약이 나오지만 급여 진행에 평균 2~3년의 시간이 소모되고, 신약을 뒷단에 쓸 수 있게 급여 설정이 되면서 장애가 심해져야 약을 쓸 수 있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며 "효과 좋은 신약을 다발성경화증 초기에 즉시 쓸 수 있어야 하는데, 현재는 장애가 심해져 직장을 잃었을 때쯤 신약을 쓸 수 있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다발성경화증 환우가 건강하게 사회생활을 이어갈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재발로 장애가 더 커지는 다발성경화증에 효과 높은 재발예방 신약의 신속 급여가 필요하다고 유지현 회장은 강조한다. 또 다발성경화증 합병증으로 꼽히는 심혈관질환, 감염 등을 비롯해 고용량스테로이드치료를 반복하면서 대퇴골두무혈성괴사 같은 스테로이드치료 부작용으로 인해 발생하는 질환에도 산정특례 적용이 필요하다고 짚는다. 

지난 2009년 유 회장도 심근경색으로 스탠트를 넣는 시술을 받고, 계속해 내과 진료를 보고 있지만 여기엔 산정특례를 적용받지 못하고 있다. 또 재발할 때마다 고용량스테로이드치료를 하기 때문에 유병기간이 긴 대부분의 다발성경화증 환우들이 대퇴골두무혈성괴사 진단을 받고 있지만, 인체 가장 큰 관절 부위로 꼽히는 넓적다리 뼈의 관절 윗부분인 '대퇴골두'를 치료하는데 드는 인공관절수술에도 산정특례가 되지 않는다. 

유지현 회장은 "유병기간이 길수록 다발성경화증 환우들은 각종 합병증 위험이 올라간다. 그것은 다발성경화증으로 장애가 더해질수록 치료비 부담이 높아진다는 의미"라며 "이 때문에 치료를 포기하는 다발성경화증 환우들이 있는데, 암과 달리 완치 개념이 없는 희귀질환을 앓는 환자들이 치료를 지속할 수 있게 다발성경화증 합병증에도 산정특례를 적용해 치료비 부담을 줄여주는 사회적 배려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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