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의대 김미나 교수(교수협의회 비대위원장)

한국중증질환연합회장님께.

김성주 회장님, 가장 힘든 중증질환을 가진 환자들의 모임 7개를 대표해 중증환자들의 권익보호를 위해 헌신하는 회장님께 존경을 표합니다. 또 전공의 집단사직으로 인해 매일 피가 마르는 고통을 겪고 있는 환자분들께도 정말 죄송합니다. 그러나 전공의들과 교수들의 사직에 대한 오해를 풀어드리고자 글을 씁니다.

울산의대 김미나 교수
울산의대 김미나 교수

대학병원 교수들은 의대생과 전공의를 가르치고 지도하는 것을 업으로 합니다. 환자 진료는 겸직입니다. 의대생과 전공의들을 좋은 의사, 전문의로 키워내는 게 교수들의 존재 이유입니다. 저는 35년 의사로서 살았고, 25년 교수로 살았습니다. 정년이 몇 년 안 남았습니다.

저 같은 교수들이 떠난 자리를 지금 의대생과 전공의들이 물려받아야 합니다. 10년 후 나올 의사 1만명을 위해 곧 전문의가 될 1만명이 수련을 포기하면 어떻게 될까요? 향후 10년 동안 수련기반이 완전히 망가질 것입니다. 중증환자를 돌볼 의사가 그동안 배출되지 않으면 지금의 교수들이 떠난 후 누가 여러분 곁을 지킬까요?

중증환자를 진단하고 치료하려면 최고의 전문가가 필요합니다. 환자 곁을 떠난 전공의들이 가까운 미래에 중증환자 곁을 지킬 유일한 의사들입니다. 매년 1만명, 10만명 의사를 양성해도 이들처럼 필수의료의 길을 선택할 의사 1만명이 나올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현재 전공의들이 실망하고 떠나버리면 앞으로 전공의 수련을 위해 지원할 의사는 급감하게 될 것입니다. 앞으로 5년간 의과대학에 추가로 입학할 1만명을 중증환자를 보겠다는 사명감이 출중한 학생만 뽑으면 된다고 생각하시지는 않겠지요? 그런 일은 절대 없습니다.

현재의 전공의들이야 말로 입학할 때부터 오늘날까지 사명감을 잊지 않은 젊은 의사들입니다. 밤을 새면서 자신을 갈아 넣어서라도 여러분을 지키겠다는 의사들입니다. 자발적으로 힘든 수련과정을 밟고 있는 이들에게 정부가 나서서 집단행동을 하면 사직서 수리를 금지하고 처벌하겠다고 했습니다. 정부는 대학병원 교수들도 사직서를 내면 진료유지명령으로 강제노동을 시키겠다고 합니다. 공공연히 노예 취급하면 아무도 안 돌아옵니다.

중증환자를 지키는 것은 교수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오랫동안 손발을 맞춰 온 팀이 함께 일해야 합니다. 지금은 교수들이 병원에 남아 초인적인 노력으로 버티며 중증환자와 응급환자를 진료하고 있지만 이미 한계에 도달해 하나 둘 사직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1명의 교수가 남을 때까지 여러분 곁을 지키는 게 교수로서 해야 할 일일까요? 수개월 후면 여러분들이 치료받던 대학병원 대부분은 문을 닫을 겁니다. 그렇게 되기 전에 비상사태를 멈추고 정상화해야 합니다.

교수들은 사직서를 내도 수리되기 전까지는 여러분을 지킬 각오를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을 떠나겠다는 게 아니라 이 사태가 장기화되지 않도록 교수들이 마지막으로 자신을 던져 파국을 막고자 하는 것입니다.

정부가 필수의료에 종사하는 의료인을 노예로 삼고, 밥그릇 때문에 환자를 떠난 파렴치범으로 몰아가면 현재의 전공의도 돌아오지 않고 미래의 전공의도 없습니다. 정부의 의료개혁 승리를 위해 여러분은 얼마나 참고 기다릴 수 있습니까? 10년 후 의사수 1만명 늘리기보다 지금 당장 대학병원 기능이 정상화되는 게 몇 백배 중요합니다. 의사를 환자 곁으로 돌아오게 할 수 있는 것은 환자들의 존경과 신뢰입니다. 우리를 지지해주십시오.

감사합니다.

울산의대 교수협의회 비대위원장 김미나(서울아산병원 진단검사의학과) 드림

 

<코리아헬스로그 자매지 청년의사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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