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병원 순환기내과 김형관 교수에게 듣는 '비대성 심근병증'

우리 몸의 근육 중 유전자 변이로 뚱뚱해져서 급사, 심부전, 뇌졸중 같은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는 곳이 있다. 심장의 근육이 바로 그것이다. 인체 다른 부위의 근육이 커지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고 심장근육도 운동으로 인해 커지는 '운동선수형 심장'의 경우에는 문제가 되지 않는데, 유전자 돌연변이로 인해 심장근육세포가 비대해지는 '비대성 심근병증(비후성 심근병증)'은 심각한 위협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서울대병원 순환기내과 김형관 교수는 유튜브 채널 '나는 의사다'에서 "운동해서 커진 심장근육은 괜찮다. 그것은 정상적인 심장근육 세포들이 건강해지는 것"이라며 "비대성 심근병증은 조직학적으로 보면 정상 심근세포 모양의 배열이 아니다. 배열들이 조금 엇갈려 들어가 있고 그 세포, 세포 사이에 조금씩 결체조직들이 변형이 돼 있다"고 설명했다. 

비대성 심근병증이라고 하지만, 실제 가슴을 열어서 비대성 심근병증 상태의 심장을 보면 보통은 커져 있지 않다. 하지만 그 심장 속을 다시 열어보면 비대성 심근병증이라고 하는 이유가 명확히 보인다.

김형관 교수는 "심장 내강 벽의 두께가 일정하게, 보통은 10~11mm(1.0~1.1cm)가 안 된다. 그런데 비대성 심근병증 환자들은 15~16mm가 돼 심장 안의 공간(내강)이 부족해진다"며 "심장 밖이 뚱뚱해지는 것이 아니라 심장 안으로 근육이 뚱뚱해지는 것"이라고 짚었다. 

물론 말기 상태로 접어든 비대성 심근병증은 커지지만, 그냥 일반적 상태일 때는 성인 심장과 대개 사이즈가 비슷하다. 그 똑같은 크기의 심장 안쪽에 4개의 내강이 존재하는데, 그 내강들이 병이 악화될수록 좁아지는 병이 비대성 심근병증인 것이다.

비대성 심근병증의 원인은 유전자 돌연변이 탓이다. 김 교수는 "지금까지 알려진 유전자 돌연변이가 1,400종 정도된다. 흔한 것은 30~40종 정도 되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유전자검사를 주로 한다"고 말했다. 

비대성 심근병증일 때 심장근육의 세포 사이의 결체조직이 변형된 이유도 원인 유전자 변이에 있다.

김형관 교수는 "심장근육을 구성하고 있는 작은 단위로 들어가면 심근분절이라고 하는 것들이 있다. 그 심근분절에 액틴과 마이오신이라고 하는 조그마한 단백섬유소들이 있는데, 그 섬유소를 구성하는 유전자에 변이가 생긴다. 그 변이 때문에 생기는 게 비대성 심근병증"이라고 설명했다. 

유전자 돌연변이가 원인이면 소아 때 대부분 병이 나타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비대성 심근병증은 전연령대에 발병 가능한 병이다. 김 교수는 "소아청소년과에도 비대성 심근병증 환자가 있고, 문헌상으로는 80대 때 진단됐다는 사람도 있다"며 "유전자 돌연변이는 태어났을 때부터 있었을 수도 있고, 중간에 생겼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또한 유전자 돌연변이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전부 다 비대성 심근병증 상태가 되는 것도 아니다.

김형관 교수는 "유전자 변이를 가지고 있는 10명이 있으면 7명은 실제로 병이 발현하고, 3명은 발현이 안 되지만 유전으로 내려보낼 수는 있다"며 "가족 중에 비대성 심근병증으로 진단된 사람이 있는 경우, 유전자 돌연변이는 50% 확률로 유전되기 때문에 그 사람의 형제자매와 친척들, 자식들도 남녀 관계 없이 스크리닝검사를 해보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그렇다면 비대성 심근병증은 주로 어떤 증상을 보일까? 김 교수는 "숨이 차다, 어지럽다, 어지러움을 넘어서 간혹 실신을 할 수 있다. 또 가슴 불편감을 느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비대성 심근병증일 때는 급사할 수도 있는데, 실제 급사한 운동선수를 부검했을 때 약 30~35%가 비대성 심근병증이라는 보고가 있다. 이런 까닭에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프로테스트를 할 때 선수들의 건강 상태를 체크해 비대성 심근병증을 배제한다. 

비대성 심근병증은 증상이 없으면 치료를 따로 안 하기도 하는 유전성희귀질환이다. 하지만 급사 위험이 있기 때문에 치료가 필요한 환자를 잘 선별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김형관 교수는 "비대성 심근병증은 증상이 없으면 일반적으로 치료를 따로 안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급사라는 위험이 있다. 급사의 고위험군의 경우는 제세동기를 몸 안에 삽입을 하기도 한다. 약물치료를 같이 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현재까지 비대성 심근병증을 완전히 치료할 방법은 없다. 김 교수는 "유전자 자체가 이미 변이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완전히 돌릴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말했다.

현재까지 비대성 심근병증으로 인한 급사를 예방할 수 있다고 입증된 치료도 '제세동기(ICD, 심실자동세동기)'가 유일하다. 김형관 교수는 "제세동기를 삽입을 해놓으면 제세동기가 알아서 부정맥이 생기면 자기가 발견해서 자동으로 전기충격을 준다"고 치료 원리를 설명했다. 

제세동기는 살짝 오른쪽 가슴 부위에 국소마취를 해서 짼 다음에 몸 안에 넣어주는 시술이 필요하며, 중간에 배터리를 갈기 위해 다시 시술이 필요할 수 있다. 이외에 비대해진 심근을 잘라내는 수술이 이뤄지기도 한다. 

김 교수는 "비대성심근증에 타입 나누는 방식이 몇 가지 있는데, 그 중 폐색성과 비폐색성이 있다. 폐색성은 심장이 수축할 때 궁극적으로 좌심실의 피가 대동맥으로 나가야 되는데, 그 나가는 길이 좁아진 경우를 말한다. 폐색성 환자는 실신도 좀 더 많이 하고, 급사도 좀 많이 하는 것 같다라고 해서 위험인자로 들어가 있다"며 "폐색성은 수술해 두꺼워진 근육을 잘라내기도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비대성 심근병증 수술은 결코 쉽지 않다. 현재는 수술 성적도 아주 만족스럽다고 보기는 어려운 상태다.

비대성 심근병증 환자에게 필요한 또 다른 치료가 있을 수 있는데, 바로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다. 이 병의 진단 뒤 의료진은 위험의 하나로 '급사'를 설명하는데, 대부분의 환자가 급사 위험에 포커싱을 해 정신적인 충격을 받는 탓이다. 김 교수는 "급사에 포커싱이 돼 정신과에 가는 경우가 꽤 있다. 그런데 그럴 필요 없다"고 짚었다.

비대성 심근병증이면 급사 위험이 있는 것이 사실인데, 왜 급사 위험에 대해 지나치게 집중할 필요가 없다고 할까?

김형관 교수는 "데이터를 보면 우리나라 환자들의 급사는 대개 2.5~3.0%쯤 된다. 전체 비대성 심근병증 환자가 100명이 있으면 2~3명 정도"라며 "나이가 65세 넘어가면 비대성 심근병증 때문에 급사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며 국내 환자에서는 급사 위험이 서양보다 높지 않다는 점을 설명했다. 

치료가 필요한 비대성 심근병증 환자를 선별하기 위해 급사 고위험군을 정하는 것은 굉장히 복잡하다. 그런데 현재도 매번 비대성 심근병증 진료지침이 업데이트될 때마다 조금씩 바뀌고 있는 상황이다. 그래도 이 병의 급사 고위험군에 대해 어느 정도 윤곽은 나와 있다.

현재 비대성 심근병증의 급사 위험요인은 가족 중 급사한 사람이 있는 경우, 심장초음파에서 심실 두께가 30mm 넘는 경우, 24~72시간 심전도 모니터링을 했을 때 비지속성심실빈맥 등 위험한 부정맥이 있는 경우, 좌심실 수축 기능이 50%가 안 될 경우 등 이외에도 몇 가지 더 있다. 

비대성 심근병증 환자가 적절한 치료를 통해 증상을 잘 조절했을 때의 평균 수명은 일반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 급사 위험을 비롯해 '심방세동'이라 불리는 부정맥과 심부전(심장의 기능 저하로 신체에 혈액을 제대로 공급하지 못하는 상태)을 잘 관리만 하면 천수를 누릴 수 있는 셈이다.

하지만 비대성 심근병증 환자는 심방세동이 굉장히 잘 생긴다. 심방세동은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동반되는 것들이 있다. 김 교수는 "심방세동은 뇌졸중을 포함한 혈전색전증(혈전에 의해 혈관이 막히는 질환)이 잘 생긴다. 심장 안에 피떡이 만들어져서 머리로 가면 뇌졸중이고 장으로 가면 장경색이 된다. 팔이나 다리 쪽에 가서 막으면 경색이 돼 마비가 되고, 그냥 두면 다리가 괴사된다"고 말했다.

심부전도 비대성 심근병증 환자들에게 주의 깊게 봐야 할 질환이다. 김형관 교수는 "비대성 심근병증 환자들은 심부전 증세가 남들보다 빨리 생긴다. 그래서 급사, 심방세동, 심부전이 비대성 심근병증 환자를 진료할 때 의사들이 다루는 세 가지 축"이라고 설명했다.  

이같은 심각한 질환의 위험이 있다면 모든 비대성 심근병증 환자에게 제세동기를 넣으면 안 되는 것일까? 그렇다.

김 교수는 "제세동기를 넣은 사람 중 20~25%가 합병증을 경험한다. 전기충격이 들어가지 않아야 될 때 들어가거나, 이물질을 몸 안에 넣은 것이기 때문에 감염될 수 있다. 또 제세동기를 넣어놓으면 삼천판막역류라는 것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것들을 다 따지면 합병증이 20~25% 되는데, 요즘 기술이 조금 더 발전해 합병증이 많이 줄었을 것 같은데 별로 많이 안 줄었다. 2018~2019년 나온 데이터는 한 20%"라고 말했다. 

비대성 심근병증 환우에게 운동이 도움될까? 2010년 중반까지는 운동이 급사 위험을 올릴 것이라고 해서 모든 비대성 심근병증 진료지침에서는 경한 운동만 하라고 돼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이상의 운동도 가능한 것으로 바뀌었다.

김형관 교수는 "운동하는 것 자체가 급사율을 올리는 것 같지 않다. 그래서 중등도 운동까지는 해도 된다라고 돼 있고, 강도 높은 운동도 의사랑 상의해서 할 수 있는 사람도 있다로 (2020년 미국 진료지침이) 바뀌었다"며 "운동을 해도 좋은데, 경쟁적인 운동을 심하게는 하지 말아야 한다. 예를 들면 테니스 단식은 안 되지만 복식은 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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