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지역암센터 주최 '암 희망 수기 공모전' 출품작

20년 전 연 10만여명이던 암 환자들이 현재 25만명에 이를 정도로 암 환자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고령화 속도를 감안하면 암 환자들은 더욱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암은 이제는 예방도 가능하고 조기에 진단되고 적절히 치료만 할 수 있다면 충분히 완치도 가능한 질환이 됐다. 이에 코리아헬스로그에서는 암을 이겨내고 있는 환자와 그 가족들의 생생한 체험담을 통해 다른 환자들에게 희망을 주고자 <나의 투병 스토리> 코너를 마련했다. 이번 이야기는 광주전남지역암센터와 화순전남대병원이 공모한 암 환자들의 투병과 극복과정을 담은 수기 가운데 화순전남대병원에서 암 치료와 수술을 받은 환자들의 이야기들이다.

당신이 내 집에 찾아올 줄은 꿈에도 몰랐지요, 늦은 나이에 귀촌해서 큰 시름없이 행복하게 살고 있는데 예고 없이 들이닥친 당신이 저승사자보다 더 무서웠습니다. 그 황망함을 늙은 내가 어떻게 감당하라고… 눈앞이 깜깜했지요. 우리 영감님은 팔십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바윗돌을 들어 올리며 힘 자랑하는 뚝심 좋은 분이셨고 청춘은 팔십 나이에 다시 오는 거라며 매사에 자신감이 넘쳤던 사람이라서 건강 문제만큼은 걱정해본 적이 없었지요. 암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큰소리치던 날들이 엊그제 같은데… 소리 없이 다가서고 있는 검은 그림자를 발견했을 때는 이미 많은 것을 잃어버린 뒤였고 그처럼 당당했던 얼굴이 창백하게 일그러지고 말았습니다.

7년이란 산중생활에서 모든 것을 다 얻었다고, 그래서 노후만큼은 탄탄대로라고 생각했는데 정작 내 집에서 도낏자루가 썩어가고 있는 줄 모르고 이제는 지난 시간들이 모두 물거품이 되고 말았지요. 그래도 청아하고 아름답던 산새 소리가 구슬프게 심장을 파고들어 많이 괴롭습니다. 대장암 3기 종양의 침윤 정도가 높고 간과 폐에 전이가 됐다고 하니 너무 참담하고 무서웠습니다.

나라님 말씀에 좀 더 관심을 두었더라면. 돈도 벌지 못하는 건강검진문서는 왜 그렇게 분기별로 날아드는지 개봉도 되지 않은 채 무지한 이 할미손에서 버려지고 말았지요. 지나고 보니 그것이 바로 희망의 메시지였던걸, 왜 그랬을까? 어리석은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영감님 더 늦기 전에 갑시다. 산 넘고 물 건너서 기차를 타고 K병원에 도착하고 보니, “아이고 이것이 무슨 일이여” 암병동을 보면서 내 눈을 의심했지요. 저 많은 사람들이 암과의 사투를 벌이고 있다니 내 영감님도 그들 속에 한 사람일 뿐, 기다림 끝에 수술을 받았고 암뎅이를 날려버린 영감님, 수척해진 얼굴이지만 믿음이 생기더군요. 그러나 그것도 잠시 많은 후유증을 남긴 채 생사를 넘나드는 항암 투병이 시작되었습니다. 항암에 밀리면 죽음이라며 한쪽 벽을 응시한 채 하루하루를 버티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아~ 내가 죄인이구나 곰 같은 사람, 얼마나 고통스럽기에…” 이 안타까운 심정을 어찌해야 할까 젊은 시절부터 영감이라 부른 사연은 고집불통에다 교과서처럼 빈틈이 없어서 내게는 항상 큰 어른이었죠. 미웠습니다.

극과 극을 달리는 성격 차이 때문에 깨어지고 넘어지고 아플 때가 참 많았고 화가 안 풀리면 등 뒤에다 몰래 주먹 총을 날리곤 했지요. 그러나 지금은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사람 죽다가 살기를 반복하고 있는 영감님께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영감님 너무 많이 힘들면 우리 도망칩시다.” 봇짐도 싸보고 울어도 보았습니다. 오만함과 무지가 부른 이 굴레를 어떻게 헤치고 나가야 할까. 만감이 교차하는 속에서도 시간은 흐르고 있었고 어느 날인가부터 차츰차츰 영감님 얼굴에 생기가 도는 걸 보았지요. 아…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이 할미 가슴에도 실낱같은 희망이 오고 있구나… 항상 차갑고 무뚝뚝해 보이던 의사 선생님 늘 엄격한 잣대만 들이대는 인간미 없는 분들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바로 환자에게 강한 의지를 심어주고 투정을 제어하는 무기가 아니었을까? 의사와 환자는 한판 승산 없는 격투기를 하면서 서로의 위치에서 감사와 희망을 교환하는 눈빛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습니다. 

세상 어느 곳보다 분주한 아우성이 공존하는 곳이 병원이 아닐까? 그 속에서도 아침에 미소 저녁까지 잃지 않는 간호사들을 보며 눈가가 적셔지더군요. 아직도 잊을 수 없는 교수님의 따뜻한 손길 툭툭 두어 번 등을 두드려주며 말 없는 속에 많은 의미를 남겨주셨던 그분의 모습이 참 아름다웠습니다. 수많은 환자가 그분에 따뜻한 손길에서 다시 태어나고 있다고 생각하니 큰 나무 그늘에서 쉬고 있는 느낌을 받았지요. 우리 영감님 가슴에 확신과 용기를 심어주신 분 오래오래 기억할 겁니다. 하산할 때만 해도 의료비 걱정이 태산 같았는데… 우리나라가 얼마나 좋은 나라인지… 마음에 짐을 다 내려놓을 만큼 큰 혜택이 주어지더군요. 참 감사했습니다. 이 나라에 살고 있다는 게 얼마나 든든했는지 모릅니다. 

늙어가는 내 삶 속에서 이런 따뜻한 인간애를 느껴 본 적이 있기나 했을까 무조건 외면하고 살고 싶었던 병원 그곳이 인생의 뒤안길에서의 유일한 피난처란걸 그리고 그 안에 담긴 고통, 사랑, 인내, 희생 이들이 뭉쳐서 만들어낸 은혜로운 동산이란 것도…. 우리네 살아가는 모습은 누구나 할 것 없이 한 편의 드라마를 엮어가며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그들과 함께합니다. 잘난체하고 무리 속에서 이탈하면 고독하고 외톨이가 된다는 걸 왜 몰랐을까? 귀촌 생활의 안일함 속에 그냥 멈춰버린 할미에게 대장암 네가 찾아와 많은 것을 깨우쳐주었으니 “고맙소”라고 말해준대도 아깝지만은 않을 것 같구나! 내 인생 끝자락에서 전환점을 만나게 해 줬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 무서운 손짓은 이제 그만 멈추어다오. 조기 검진에 밀려 하루빨리 이 땅에서 소멸되기를… “이제는 창밖을 내다볼 여유도 생겼나 봅니다. 비가 내리고 있네요. 화순전대병원의 아름다운 풍경은 아마도 빼곡하게 들어찬 숲속의 주차장이 아닐까? 저마다 안타까운 사연을 안고 서 있는 차량들이 마치 한 폭의 수채와 같았습니다. 상쾌한 공기 넉넉한 품은 어디에서도 느끼지 못했던 편안함이 있더군요. 조금만 더 기다리면 암에서 해방된 영감님과 산촌으로 돌아갈 생각에 마음이 설레고 있습니다. 

영감님, 살아줘서 감사합니다. 삶이란 쉬운 것 하나 없고 고통 속에서 한두 번씩 넘어지고 찟겨지기가 일쑵니다. 하나뿐인 목숨 인생 또한 단 한 번입니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이 있을까요? 소통이 안 되는 곳에는 결코 행복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가슴에 새겨봅니다. 저마다 힘겨운 무게로 살아가지만, 하루하루를 무사히 넘어설 수 있다는 그 자체가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를 느끼며 남은 여생 눈 크게 뜨고 씩씩하게 살아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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