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지역암센터 주최 '암 희망 수기 공모전' 출품작

20년 전 연 10만여명이던 암 환자들이 현재 25만명에 이를 정도로 암 환자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고령화 속도를 감안하면 암 환자들은 더욱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암은 이제는 예방도 가능하고 조기에 진단되고 적절히 치료만 할 수 있다면 충분히 완치도 가능한 질환이 됐다. 이에 코리아헬스로그에서는 암을 이겨내고 있는 환자와 그 가족들의 생생한 체험담을 통해 다른 환자들에게 희망을 주고자 <나의 투병 스토리> 코너를 마련했다. 이번 이야기는 광주전남지역암센터와 화순전남대병원이 공모한 암 환자들의 투병과 극복과정을 담은 수기 가운데 화순전남대병원에서 암 치료와 수술을 받은 환자들의 이야기들이다.

나는 노인복지관에서 근무 중인 8년 차 사회복지사다.

8년의 기간 동안 많은 어르신들을 만나왔으며, 도움이 필요한 어르신들에게 그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했고 어르신들의 마음을 다 이해하고 많은 도움을 드렸다고 생각했었다.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오고 나서야 8년 동안 사회복지사로서 어르신들에게 제대로 된 서비스를 제공했는지, 어르신들의 마음을 정말 이해하고 도움을 드린 게 맞는 건지라는 의문이 들었다.

급성 골수성 백혈병 판정을 받다

2020318, 서른 살의 나이에 급성 골수성 백혈병 판정을 받았다.

처음에는 하늘이 너무 무심했고, 눈물만 하염없이 흘렀고, 이제 3살이 된 나의 아들에게 미안했고, 사회생활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아들과 신랑을 두고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두려움이 가득했었다.

처음 진단을 받았을 때, 신랑하고 둘이 왜 우리한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지금 우리 꿈꾸는 거지?’, ‘진단이 잘못됐을 거야라는 말만 되풀이했었고, 시간을 되돌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나의 병에 대해 인지하는 순간 현실을 도피하고 싶었고, 이렇게 살아서 뭐 하나 그냥 죽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나는 내 몸을 아끼지도, 사랑하지도 않았다

출산으로 인한 제왕절개 수술, 입원 이외에는 30년 동안 수술, 입원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았고, 크게 아픈 적이 없었기에 항상 건강에 대해서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평소 일을 하면서 무거운 물건을 들거나 힘써야 하는 일을 할 때면 주변에서 몸 생각하면서 하라고 했지만, 그때마다 나는 아직 젊고, 건강하니까, 아픈 곳 없으니까라며 내 몸을 함부로 대했었다.

몸이 아프거나 힘들면 쉬었어야 했는데, 직장에 피해 주는 것 같아서 그냥 참고 버티기도 했었고, 엄마라는 이유로 아파도 참고 버틸 수밖에 없었다.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내가 먹기보다는 신랑과 아들 먹이기 바빴고, 나는 아침을 먹지 않아도 아들은 꼭 아침을 먹여서 어린이집을 보냈었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하루 세끼 모두 챙겨 먹고 출근했었는데, 아이를 낳고 난 후에는 어린이집에 보내고 출근을 해야 했기에 나에게 아침은 사치였다. 그때, 조금이라도 내 몸을 아끼고 사랑했더라면, 내 자신을 먼저 생각하고 살았더라면 더 건강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은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5번의 항암과 골수검사, 1번의 조혈모세포이식

급성 골수성 백혈병 판정을 받자마자 다음날부터 항암에 들어갔다. 평소 비위도 약하고, 혈관이 얇아서 주사도 힘겹게 맞는 나에게 항암은 고통 그 자체였다. 처음 진단을 받았을 당시, 내 몸에 암세포가 96%가 있었으며 유전자 변이도 좋지 않아 고위험군이기에 조혈모세포이식을 꼭 받아야만 한다고 했다. 항암은 암세포를 5% 미만으로 줄이는 역할을 해주었고, 처음 항암에서 5% 미만으로 떨어져야 했지만, 처음부터 암세포가 많았던 탓인지 한 번에 항암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96%에서 33%로, 33%에서 2.5%로 되기까지 5번의 항암이 진행되었고, 항암을 시작할 때마다 나는 아무것도 먹지 못했으며, 물만 마셔도 구토를 했었다. 모든 것이 좋지 않은 상황에 좌절도 했었고, 눈물만 났었지만 버티고 버틴 결과 친오빠와 유전자가 100% 일치하여 조혈모세포이식을 무사히 받아 지금은 건강하게 지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꼭

, 육아 모두 하기에는 벅차기도 힘들기도 했지만 행복했었다. 그때의 행복을 소중히 여겼어야 했지만, 지금의 행복 조금만 더 미루고 악착같이 돈 벌고 성공하면 지금보다 더 큰 행복이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다. 처음에는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나만 불행하고 다른 사람들은 다 행복한 것 같은데라며 세상을 원망하기도 하고 울기도 많이 울었지만, 내 자신을 아껴주고 사랑하면서 지금 나에게 주어진 행복에 감사하며 살아가라는 뜻이라는 걸 뒤늦게야 깨달았다.

암이란 존재는 나에게 많은 걸 가르쳐주었고, 나를 되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나는 아직 엄마로서, 아내로서, 딸로서, 며느리로서, 사회복지사로서 해야 할 일이 많기에 지금보다 더 건강해져서 암에 걸려 힘들어하는 환자들에게 희망과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6개월 동안 항상 밝은 모습으로 대해주셨던 73병동 간호사분들과 의사 선생님들로 인해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치료를 받을 수 있었기에, 의료진분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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