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관리청 제1회 '희귀질환 극복수기 공모전' 출품작

희귀난치병 환자들은 정확한 병명을 진단받기까지 평균 5년 동안 병원을 8번 정도 방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많은 비용과 시간을 들여 진단에 성공하더라도 제때 정확한 치료받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질병관리청은 희귀질환에 대한 대국민 인식도를 제고하고 희귀질환자들의 정서적 지지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제1회 '희귀질환 극복수기 공모전'을 개최했다. 이번 공모전에는 총 25편의 수기가 접수됐다. 이에 코리아헬스로그는 희귀질환자들이 질환을 극복해 나가는데 용기를 낼 수 있도록 희귀질환 극복수기 공모전에 도전한 다양한 환자들의 이야기를 연재한다.<편집자주>

어린아이 배가 볼록하게 튀어나오니 올챙이배라며, 주변에서는 뱃골이(옛어른들이 흔히 하는 말) 크기 때문이라고 했다. 예사롭지 않게 생각했던 생후 12개월쯤 예방접종차 방문했던 소아과 주치의 선생님은 뱃골이 큰 이유가 다름 아닌 장기(간과 위장) 크기가 성인수준에 가까워서라며,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소견서를 써주셨다. 

○○대학병원 본원 소아과를 방문하여 그곳에서 듣게 된 이상한 말(정확하게 병명을 모르던 의사들). 하지만 며칠 입원 후에도 정확하게 병명을 말 할 수 없다고 했다. 또다시 소견서를 받아(21년 전의 병원시스템은 초진은 무조건 병원 방문 진료가 있어야만 전화예약이 가능했기에) 인터넷으로 간과 관련된 전문의가 있는 서울쪽 병원을 검색하다가 ○○어린이병원에 관련 의료진이 있어서 무작정 상경하여 병원에서 대기하다가 오랜 시간을 할애한 만큼 아이의 병명을 알게 되었다.  

바로 입원이 가능하느냐고 물어 남편만 부산으로 보내고 아이와 함께 7일간 병원에 입원하여 정확한 검사를 한 뒤 최종적으로 병명이 당원병(1A형)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부산에선 알지도 못한 병명을 먼 서울에서 정확하게 알게 되었지만 치료와 관리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않고 1~3개월에 한번씩 외래와 입원으로 그리고 음식 관리에 대해서 간략하게 알려준 것이 전부였다.(간을 보호하는 약 복용 및 채혈로 중성지방과 젖산 수치를 측정하고 간초음파와 간섬유화스캔 등을 해야한다는)

그렇게 약과 음식으로 관리했지만 몸 상태는 성장을 하면서 점점 더 좋아지지 않고 성장도 일반인보다 더디게 되는 질환인 만큼 아이는 또래 친구보다 작고 왜소했다. 

더욱이 배만 볼록하게 나온 현상으로 14세까지 관리 차원의 진료를 받았다. 하지만 중성지방수치가 정상수치의 수십배 높게 나오는 등 간수치와 간경화가 진행되어 간에 물혹이 생기는 일이 반복됐다. 

특별하게 식단관리 매뉴얼이 없었다가 ○○○(현 ○○소아청소년과) 교수님을 만나면서 관리하는 방법과 치료를 할 수 있는 약(전분 옥수수전분)을 알게 됐고, 식단관리 메뉴얼을 함께 상의하면서 점점 아이의 몸 상태가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1대 1(담당의사 대 환자)의 맞춤식 진료로 더욱 더 아이의 몸은 변화가 되어갔고 고등학교 3학년때까지 관리를 철저하게 하여 무려 키가 145cm(중3 때)였던 것이 172cm(현재 23세)가 되었다. 

키가 너무 작아서 또래 친구들과는 확연히 차이가 났었지만 지금은 또래 친구들과 비슷해졌고 꾸준하게 관리하여 지금의 몸 상태는 중성지방 외 당원병에 관한 수치들은 모두 정상이며, 현재도 전분섭취로 혈당조절과 몸 관리를 하고 있다. 

성인이 된 지금도 식단관리(당원병식 : 당 섭취제한과 탄수화물 제한, 1일 1회 섭취량)는 필수다. 초등학교 급식 때부터 직접 도시락을 싸주며 나만의 방식으로 철저히 식단관리를 해왔는데 어렵고 힘들었지만 엄마를 믿고 따라 와준 아이가 너무 고맙고 대견했다. 그래도 엄마가 독해야만 아이가 건강하게 삶을 살 수 있다는 생각으로 독하게 식단관리를 할 수 있었다. 

중학교 떄 ○○○교수님을 ○○병원에서 만남으로 우리 아이에게 희망이 보였다. 카톡으로 아이의 상태를 매일 체크해주시고 먼저 연락도 오고 철저하게 맞춤식 의료를 해주시니 엄마로서 더 희망을 갖고 의지하게 됐다. 음식을 나만의 방식으로 연구하여 아이가 먹을 수 있는 여러 가지 음식을 만들어 밴드(한국당원병환우회)에도 공유하다보니 환우와 보호자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과 함께 이 병에 대한 얘기로 위로하고 위로 받고 정보도 나눌 수 있었다.

아직 치료가 활성화가 되어 있진 않지만 임상시험이 잘 되어 의료보험 적용이 되어 이 희귀질환 당원병의 환우들에게 희망이 되어 비싼 의료비 부담에서 자유로워졌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지금은 우리 아이가 어릴 적에 접했던 황당하고 속수무책이었던 의료체계에서 많은 개선과 연구로 현재 당원병에 대한 정보가 많아졌지만 그때 당시는 정말 힘들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동분서주 했던 기억이다. 하지만, 지금의 의료 변화로 당원병은 충분히 잘 관리만 한다면 일반인보다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교수님의 말처럼 희망을 안고 잘 케어 한다면 분명 좋은 결과로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게 희귀병 '당원병'이라고 생각한다.

희망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여기 지금 이곳에서 시작된다. 

절망속에서 나는 아이의 건강한 삶을 찾아주기 위해 무작정 상경한, (서울) 지방(부산)에서의 무모한 도전이었지만 지금 현재는 내 아이가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고 앞으로도 더 관리하면 일반인처럼 살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되돌아보면 주마등처럼 그시간이 스쳐가는 듯 하지만 잘 견디고 엄마를 믿고 따라와 준 아이가 더 없이 고맙고 대견하게 느껴진다. 앞으로도 더 괸리하여 정말 행복하게 삶을 살아가길 바란다.

엄마로서 때론 악역도 하면서 지금까지 케어하면서 혼자서 울기도 하고 왜 내 아이에게 이런 희귀병이 생겼는지 원망도 속으로 하면서 강한 엄마로 태연하게 할 수밖에 없었지만 성인이 되고 난 후 아이가 “엄마가 아니었다면 난, 아마도 죽었을지도 모른다. 엄마가 잘 챙겨줘서 이만큼 건강해졌다”라고 해준 말은 언제나 생각해도 눈물이 울컥 난다.

되돌아보면 참 시간이 빨리 흐른 듯하다. 아이가 성장할 때는 앞날을 기약 할 수 없던, 어두운 터널 같은 날도 있었고 햇빛 찬란한 날도 있었지만 이 모든 것도 아이가 있었기에 더 희망을 품고 케어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어떻게든 이겨낼 수 있는 에너지가 있었기에 희망을 잃지 않았던 것이다.

앞으로도 계속 희망적인 마음으로 당원병을 마주하며, 치료와 관리하면서 더 건강한 아이로 살아 갈 수 있도록, 조력자로서 아이 곁에 있을 것이다. 엄마는 어떻게든 이겨 낼 수 있는 희망을 보았으니깐.

내 아이로 이 세상에 와줘서 고맙다 아들아. 그리고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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